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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차동엽 신부 - 교황이 주신 메시지서 답을 찾는 건 우리의 몫 (08.18)
2014.08.18 5338

[특별 기고]교황이 주신 메시지서 답을 찾는 건 우리의 몫

차동엽 신부 
인천가톨릭대 교수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교황님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분이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절 한국 사람 중에 교황을 지근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자주 만났던 문한림 주교로부터 내가 거듭 들었던 증언이다. 속을 알 수 없다? 분위기상 문 주교의 말은 내게 “속이 워낙 깊어서 그 지혜와 배려의 경지를 가늠하기 어렵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불경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쳇말로 그분 속에서 ‘착한 능구렁이’가 노상 ‘착한 계획’을 궁리하고 있음을 언급한 셈이라 할까. 

이제 슬슬 이별 국면으로 치닫는 4박 5일간의 교황 방한 일정. 그 숱한 감동 어록과 유쾌한 일탈 시리즈를 수습하는 것은 고스란히 우리 몫으로 남게 되었다. 과연 교황이 우리에게 전해 준 선물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힌트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허허실실’ 속깊은 교황 프란치스코

“나는 등반가에게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그를 위해 대신 산을 올라 줄 수는 없다.” 이것이 결국 교황이 이번 방한에서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의 요약 아닐까. 

“나는 당신들을 기꺼이 안아 줄 수 있다. 위로든, 격려든, 조언이든, 당신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다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산은 당신들이 오르는 것이다.”

어쩌면 교황은 우리가 기대하던 답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대신에 우리가 기대하지 않던 그 무엇을 선물했을 수도 있다. 허허실실(虛虛實實). 고기를 기대하던 우리들에게 고기 잡는 법만 가르쳐준 격이랄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작 현금의 절망 문화에서 벌떡 일어서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신의 언행에 숨겨 있는 상징적 메시지로 우리가 스스로 일어나도록 부추기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잘 알고 있다. 사실, 교황의 언행에는 상징이 있다. 


특권을 거부하고 자신을 낮추는 삶

우선 그의 손에 늘 들려 있는 뭉툭한 가방부터 그렇다. 교황은 왜 이동 중에 항상 자신의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는 것일까? 여기에는 ‘나는 상전이 아니다. 특권을 누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교황의 가슴에 걸려 있는 황금이 아닌 철제 십자가. 이 역시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이 따를 삶이지, 장식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의 표명이다.

몇몇 특정 사람과의 만남의 자리도 그 본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는가? 바로 소통과 공감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함이다. 단순히 그 사건의 희생자만을 보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신음하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 모두에게 연민과 애정을 품자는 촉구인 것이다. 서로 ‘네 탓, 내 탓’ 하기 이전에 먼저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안아주라는 것. 

교황의 신선함은 꽃동네에서도 포착됐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장소의 요구에 맞춰 그는 자신의 신발을 벗어 직접 가지런히 놓아뒀다. 장애아들의 공연 관람 때는 다른 자리에서와는 달리 의자에 앉기를 거부했다. 손님이 아닌 친구의 위치로,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같아지려는 자세! 이 역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웃을 사랑하자는 묵언의 메시지다. 누구도 거절하기 어려운 상징적 초대인 것이다. 

연일 교황을 향해 쏟아졌던 대한민국의 열정적인 환호와 찬사! 그 모든 축제적 감동이 역사의 한 지점에 박제되고 마는 어리석음만은 피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온후한 미소 바로 위, 그 그윽한 눈빛의 고별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스스로 일어나 비추어라

“나에게 보내 준 성원과 열광에 감사합니다. 이제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나의 말과 행동이 뜻하는 상징을 읽어 봐 주세요. 그리고 그 상징을 여러분이 먼저 실천해 보세요. 내가 한 것들의 10분의 1이라도 따라하는 데 공을 들여 보세요. 나는 사실 답이 없습니다. 답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교황이 우리를 향해 들어 보였던 엄지를 이제 우리들이 서로에게 높이 들어 올려 보여야 할 차례다.

차동엽 신부 인천가톨릭대 교수·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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